예상 외로 술술 읽히는 책. 아마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전이겠지만, 나한테는 전래 동화나 서사시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박경숙이 옮긴 버전을 읽었다. 기따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러시아 소설처럼 등장인물도 많고, 얽혀 있는 인과응보의 관계도 다양하다. 기따는 “집안 어르신 및 사촌과의 살육전을 앞두고 갈등하는 아르주나에게 ‘걱정 말고 나가서 싸워’라고 끄르슈나 신이 독려하는 내용”이다.
초반에는 끄르슈나 신이 아르주나에게 “내가 최고다”라고 길게 얘기하는데, 딱히 공감이 되지 않아서 대충대충 읽고 넘어갔다. 후반부에서는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설파하는데, 드문드문 기억할 만한 문장이 있었다. 뻔한 내용이긴 하다.
“아르주나여, 선한 일을 하는 네 부류 사람이 나를 섬기느니. 바라따의 황소여, 고통에 신음하는 자, 배움을 구하는 자, 풍요를 찾는 자, 그리고 앎이 있는 자가 그들이다.”
신을 찾는 사람의 네 속성이다. 종교에 의지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삶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또한 위와 같이 색인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신념으로 이루어져 있느니, 어떤 신념을 가졌느냐가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워렌 버핏의 Inner Scorecard가 떠올랐다. 당연한 건데, 언제부터인가 신념을 고민하면서 살지 않게 됐다. 그리고 세속의 안경을 쓰고부터는 신념을 지키는 삶이 딱히 멋있어보이지 않는다.
“결실을 탐하지 않는 자가 정해진 일을 집착 없이, 애착과 미움 없이 하는 것을 사뜨와 기질이라고 하느니. 그러나 아만으로 가득한 자가 욕망을 좇으며 숱한 노력을 기울여 하는 행위, 그것은 라자스 기질의 것이라고 일컫는다. 뒤따르는 결과, 손실, 해, 역량을 살피지 않고 미혹으로 인해 시작한 일, 그것은 따마스적인 것이라고 한다.”
‘무엇’도 중요하지만 ‘왜’와 ‘어떻게’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은 재물의 종이지만 재물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는 것이 진리요.”
재물의 종이 되지 말고, 재물을 종으로 삼으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마하바라따(기따를 포함하는 경전 이름)에서는 재물이 사람의 종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단언하니까 재물의 미혹성이 더 와닿는다. 재물을 종으로 삼아야지, 라고 건방 떨기보다는 ‘재물은 사람의 종이 될 수 없다. 사람이 재물의 종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겸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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