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좋은 일인가

by Dongeun Paeng
Oct 22, 2025 · 만 35세

(2025년 7월 중 사내에 공유한 두 개의 글을 합쳤습니다.)


“어떤 일이 좋은 일인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루는 주제입니다. 다만 잘 다룬 주장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다룰 때는 순환 논법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번 잘 정리해두면 두고두고 유용합니다. 제가 정리한 버전을 소개합니다.


좋은 일의 세 가지 필요조건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려면 다음 세 가지 모두 만족해야 합니다.


1. 즐겁다

2. 돈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3. 내적 가치에 부합한다


셋 중 하나 혹은 둘만 만족하면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기반이 취약해 언젠가 미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1. 즐겁다


일 자체가 즐거워야 합니다. 찰리 멍거는 “do what excites you”라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끌리는 일을 하라고도 했지요. 즐겁지 않은데도 일하는 것은 희생입니다. 숭고한 이유에서건, 하찮은 이유에서건 말이죠. 저는 제 딸이 “아빠는 왜 그 일을 해?”라고 했을 때,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희생하는 거야”라고 답하지 않을 겁니다. 그 대답이 딸의 직업관 형성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죠. 힘든 일은 즐겁지 않다는 오류도 경계해야 합니다. 힘들어서 즐거운 일도 있습니다. 한동안의 고통 뒤에 큰 만족이 오는 일은 ‘즐거운 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에피쿠로스가 이미 육체적, 감각적 쾌락과 즐거움을 구분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제게는 지식과 발상을 이용한 창조가 즐거운 일, 멋진 인생의 토대입니다. 그리고 뛰어난 발상은 여유, 의지, 난관을 필요로 합니다. 알다시피 저는 5월 휴가 말미에 ‘내가 먼저 즐거워야 한다'는 철칙을 세웠습니다. 즐겁지 않으면 일을 오래 하기 힘들고, 오래 일하지 못하면 복리의 마법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면 이 마법의 주문을 수십 년 간 외우면 위없는 행복과 안정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따라서 즐거운 일터를 만드는 것은 제게 지상(至上) 과제입니다.


나는 언제 즐거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지식과 발상을 이용한 창조”입니다. 그리고 우리 팀에선 이것이 꽤 보편성을 띤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학창 시절과 사회 생활에서 얻은 지식을 일에 직간접적으로 활용할 때 효능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자기 일에 지식이 파고들 틈이 전혀 없으면 금세 단조로움을 느끼죠. 다만 시간이 흐른다고 지식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기억 관리 방식은 특이하게 진화했습니다. “앗!”이라는 놀라움을 느끼지 않는 순간은 머릿속 깊은 곳에 저장만 해두고, 꺼내 쓰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지식이 제대로 ‘쓰이려면' 교묘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 전략은 바로, 애초부터 신선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선한 지식, 즉 “앗!” 소리 나오는 지식은 어떤 지식일까요? 내 삶에 적잖은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낯선 지식입니다. 생존에 직결된 뉴스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지식은 스스로 찾아나서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날 선 지식을 찾고 정리한 후 일에 적용해보고, 정교하게 조탁해 실전성을 높이는 되먹임 과정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복리적인 격차는 수천, 수만 명의 입사 동기들 중 극소수만 삼성 임원이 되는 현상과 일맥상통합니다.


발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탁월한 발상을 기다리는 일은 꽤나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적 몸살을 겪고, 끝내 문제 해결에 이르렀을 때 강한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했습니다. 즉 고민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적자(適者)의 특징입니다. 고민 끝에 어떤 발상이 나오고, 그 발상이 지식과 합쳐져 뛰어난 창조로 이어질 때 우리는 마치 작가가 된 것처럼, 프로듀서가 된 것처럼, 어떤 창조적인 예술가가 된 것처럼 일에서 쾌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이 창조의 쾌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 달에 한 번만 지식과 발상의 조합으로 창조의 희열을 느끼면, 버드나무를 기어이 드러눕히는 바람을 만나도 ‘난 내 일이 즐겁다’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발상을 중심으로 업무 문제를 풀어나가는 습관을 들여보면 어떨까요? 코스모스 서문에서,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이 몇 시간이고 벤치에 앉아 미동도 없이 자연을 바라보던 모습을 회상합니다. 그런 깊은 사색이 축적된 인생이 얼마나 보람찰지. 우리 일의 일면도 그렇게 만들어볼 수 없을까요? 피터 틸은 ‘쉬운 일을 많이 쳐내지 말고, 가장 어려운 단 한 가지 일을 해라'라고 조언했습니다. 아이디어, 즉 발상이 열쇠라는 헤이스케의 말과 잘 어우러지는 말입니다.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가는 여러분 모두, 일의 중심에 타이핑이 아니라 발상을 두도록 노력해보세요.


돌이켜보면, 발상 없는 지식은 지적 희열을 주지 못합니다. 지식 없는 발상은 몇 번은 재밌지만 금세 시시해집니다.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에게는 어려운 수학 시험이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발상력을 키우기 위해 이런 난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단순한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끝으로 뛰어난 발상은 여유와 의지를 꼭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유가 없으면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한편 여유를 사색과 고민에 사용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으면, 그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맙니다. 그러니 여유와 의지도 꼭 필요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지식과 발상을 이용한 창조가 즐거운 일, 멋진 인생의 토대이다. 뛰어난 발상은 여유, 의지, 난관을 필요로 한다.


2. 돈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돈이 기준 되면 나쁜 일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장 24절


이 구절의 심오함은 돈의 배타성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돈이 차지한 자리에는 다른 것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과 더불어” 돈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뜻이죠. 돈이 기준이 되면, 일껏 얻은 업무 성취감이 벼락 친구 앞에서 무력감으로 변합니다. “이 친구는 코인으로 50억을 벌었는데, 난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죠. 이처럼 돈을 기준으로 삼는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hedonic cycle에 빠집니다.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에 나오는, 부자들이 더 큰 부자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돈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아무리 부자여도, 더 큰 부자를 보면서 회의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사랑, 존경, 신뢰처럼 돈보다 항구적인 가치를 기준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먼 미래까지 축적할 위대한 유산(legacy)은 무엇인가’ 하는 정념(正念)을 가져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질문에 천착해 돈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재산에 집중하자 나는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발명가로서 인정 받고 싶지, 돈 많이 번 사람으로서 인정 받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애플의 제품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다.” 그는 이 생각을 부단히 유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큰 부자가 맞지만 부자로 수식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마음 속에 영원한 비저너리로 남아 있죠.


모차르트는 돈 관리를 못해 말년에 찢어지게 가난했고, 고흐는 화가로서 돈은 물론이고 명성도 얻지 못했지요.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 재산은 지금 가치로 약 9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영웅이었던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전성기 자산이 현재 가치로 겨우 6.5조 원 수준입니다.


사람은 그가 남긴 이야기들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가치를 묻는 것은 어렵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 연설에서 “지난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물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할 일을 하고싶나?”라고 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3. 내적 가치에 부합한다


내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평생 할 수 없습니다. 평생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흔을 남깁니다. 내적 가치(Inner Scorecard)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제게는 정직, 성실, 평정, 집중 이렇게 네 가지가 Inner Scorecard인데요. 이것을 자주 포기해야 하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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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01, 2025 · 만 35세
(링크드인에 올린 글을 전재하였습니다.) 더 보기